카운슬러 (The Counselor)

경험한영화 murmur 2014. 1. 19. 11:59

 

 

코맥 매카시다운, 하지만 약간 달라 아쉬운

 

 코맥 매카시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운명을 만나게 된다.

절대악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무서을 정도로 공평하고 피할 수 없는 운명.

그 운명을 따라 갈 수 밖에 없는 주인공의 모습과 건조하고 무심하지만 아름다운 지문들까지,

단순히 인간의 무력함을 넘어서는 더욱 커다란 운명의 존재를 깨닫게 된다.

 

 코맥 매카시의 각본과 리들리 스콧의 만남이라는 말을 들을 때 어느정도 영화의 모습을 예상할 수 있었다.

욕망에 충실한 짐승같은 인물들과 그들의 뒷덜미를 노리는 지치지 않는 사냥개의 모습을 스타일리시하게 그리지 않을까 하는 예상

(호화캐스팅은 예상 밖의 보너스였다). 기대 반 우려 반의 미묘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보고 나서의 느낌은 영화를 예상할 때 가졌던 우려가 현실로 되었음을 확인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영화가 형편없었다는 말은 아니다. 전형적인 코맥 매카시의 세계관과 스타일리시한 연출, 최고는 아니어도 흠잡을 데 없는 연기까지,

어찌보면 2013년에 본 영화 중 가장 무서운 영화였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내 생각에는 코맥 매카시의 세계에는 스타일리시한 연출이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무정하고 절제된, 건조한 연출이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화려한 영상미와 매카시의 다른 작품보다 조금 더 힘을 준 듯한 대사가 만나니, 허세로 보이는 순간들이 거슬리기도 했다.

양쪽 다 힘을 주기 보다는, 한쪽이 힘을 약간 뺐다면 더욱 장점이 부각되었을 텐데라는 생각에

(그리고 힘을 준쪽이 코맥 매카시였다면 하는 개인적인 바램이 크다) 아쉽다.

 

 절대악으로 그려지는 캐릭터의 흡입력이 다른 작품에 비해 약한 것도 아쉽다. 가까이는 악몽과 같은 헤어스타일의 안톤 쉬거부터,

핏빛 자오선에서의 판사까지 압도적이었던 전작들의 캐릭터에 비해 카운슬러의 악역은 강렬함이 부족하다.

살아있는 운명과 같던 전작의 캐릭터에 비하자면 먹이사슬 위의 상위 포식자같은 느낌이랄까?

운명 그 자체와 같던 캐릭터의 존재가 그리워지는 부분이었다.

 

 사실 워낙 내가 기대했던 부분이 명확해서 아쉬움이 남을 뿐 객관적으로 볼 때 영화는 괜찮았다.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공감할 만한 무시무시한 장면도 충분히 인상적이다.

내가 코맥 매카시에게 기대했던 것들이 너무 크고 명확했다는 것이 객관적인 관람을 방해한 것일지도.

그만큼 내가 코맥 매카시를 좋아하는 증거겠지.

 

p.s 2013년의 영화 평을 보다보면 올해 최악의 영화 중 하나부터 가장 과소평가된 영화까지 다양하게 평가되고 있는 모습이 재미있다.

 

 

  

posted by 아쌀

토리노의 말 (The Turin Horse)

경험한영화 murmur 2012. 2. 29. 21:29


바람소리, 뒷모습, 압도적인, 소멸, 체험

길게 적었던 글은 모두 지워버렸다.
뭐라고 해야할 지 모르겠거든.

이 영화는 압도적이다.
단순하지만 무겁고, 무섭다.

영화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을 지 모른다.
체험이라고 불러야 할 정도로, 보고 난 후의 잔상이 사라지지 않는다.

어쩌면 올해의 영화를 넘어, 인생의 영화를 접한 것일지도 모른다.

아직도 바람소리와 뒷모습이 떠나지 않는다.



posted by 아쌀

커피와 담배 (Coffee And Cigarettes)

경험한영화 murmur 2012. 2. 26. 21:28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최고의 조합, 관심없는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뭔가 이상하면서 우스꽝스러운 사람들. 그들 사이에는 두 가지가 자리잡고 있다.
시커먼 커피와 새하연 담배연기.
아무 연관이 없는 11편의 이야기 속에서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면서 이상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뭔가 핀트가 맞지 않는 그 이야기들에 집중할 필요는 없다.
그 사이에 위치한 이상한 분위기와 커피, 그리고 담배만 기억하면 된다.
멍하니 보다 낄낄거리고 갸우뚱하다가, 영화를 잠깐 멈추고 커피 한잔을 기져오면 된다.
담배를 피는 사람이라면 영화 시작하자 마자 한 대 입에 물고 있어도 좋다. 그게 이 영화를 즐기는 완벽한 방법일거다.

 이거 하나는 분명하다. 금연에 도전하는 사람은 이 영화를 피해야 한다는 것.
담배를 배우지 않은 나이지만, 이 영화를 볼 때마다 담배를 피우고 싶은 욕구에 휩싸일 정도니까.
커피만 마셔도 이렇게 좋은데, 커피와 담배의 조합은 어떤 느낌일까 하는 궁금증을 가지게 만드는
시시껄렁하면서 딱 내 취향인 영화.


posted by 아쌀

현기증 (Vertigo)

경험한영화 murmur 2010. 11. 9.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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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dies But Goodies!!
 
 히치콕의 영화 중 직접 본 것은 '싸이코'와 '새'밖에 없는 나로서, 히치콕의 영화는 다하지 못한 숙제와 같은 느낌이었다.
이전에 본 두 작품은 호러장르의 팬이라는 편향된 시각으로 본 것이었다면, '현기증'은 장르영화의 팬이 아니라,
영화팬으로 바라본 차이가 있었다고 할까? 그런데 예상보다 더 '현기증'은 마음에 드는 영화였다.

 지금의 시각으로서는 느린 편집과 예상가능한 이야기로 진행되는 이 영화는 충분히 지루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느껴지는 불안함 또는 스릴넘치는 분위기 때문에 지루함을 느낄 틈은 없었다.
등장인물들의 과장된 듯하지만 강렬한 연기와 (지금의 시각으로는)어설픈 특수효과를 잊게 만드는 촬영기법,
그리고 뭐라 꼬집어 말할 수 없는 신경증적이고 묘한 분위기만으로 만들어 낸 긴장감이 인상적이었다.
또 인상적이었던 것은 여자주인공이 풍기는 분위기였는데, 직접적인 노출이 없는데도 에로틱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이 대단했다. 그 우아하면서도 정체를 알 수 없는 묘한 느낌의 눈빛!

최근의 빠르고 자극적인 스릴러 영화에 뒤지지 않는 스릴과 몰입감이 인상적이었던 '현기증'은,
고전영화가 가지고 있는 '본질'의 힘을 깨달을 수 있는 멋진 경험이었다.

p.s.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영화는 뭔가 깊은 '무엇'이 있는 것 같다.
이 영화를 심리학을 공부하고 나서 다시 본다면 지금의 단순한 느낌 이상의
강렬한 충격이 있지 않을까하는 그런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posted by 아쌀

하얀 리본 (The White Ribbon)

경험한영화 murmur 2010. 11. 9.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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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어렵고 은밀하게 불편해진 미카엘 하네케

 미카엘 하네케라는 이름은 나에게는 '충격'과 동의어로 기억되고 있다.
관객을 병신으로 만들던 '퍼니 게임'과 남과 여, 사랑을 주는 이와 사랑받는 이, 지배와 피지배를 차갑게 그린
'피아니스트'는 아직까지도 강렬한 충격으로 기억되고 있기에, 미카엘 하네케의 하얀 리본 또한 강렬한 충격에
대한 기대를 품고 극장으로 달려갔다.

 예상대로 차갑고 불편한 이야기를 보여주던 하얀 리본은 예상보다 더 어려웠다.
스릴러 형식으로 진행되는 하얀 리본을 보는 내내 감독의 의도대로 끌려가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느껴지는 불안함과 폭력적인 분위기는(실제로 보여지는 폭력이 아닌, 폭력으로 둘러쌓인 분위기랄까)
개인의 차원을 넘은, 한 마을 혹은 사회에 가득 차있는 거대한 흐름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안에서의 개인은 별다른 힘을 가질 수 없는 미력한 존재일 뿐.

 세대를 이어 강화되는 폭력과 파시즘, 독재라는 무거운 주제를 무게감있게 그려낸 하얀 리본은 그동안의
미카엘 하네케의 영화와는 약간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개인보다는 사회를, 직접적인 폭력보다는 폭력의 뒤에
자리잡은 폭력적인 사회를 그리고 있는 이 영화는 분명 이전의 미카엘 하네케의 영화와는 다른 지점에 가 있다.
하지만 불편한 이야기를 통한 강렬한 주의환기를 가져온다는 점에서는 여전히 그의 영화답다.

 
posted by 아쌀

경험한영화 murmur 2010. 8. 18.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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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라는 한 편의 시를 대하는 태도

 시를 보는 중 받은 느낌은 '큰 이야기를 담고 있구나'하는 것이었다. 한 등장인물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아닌,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져 있는 영화라는 느낌. 단순히 시를 쓰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인생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태도에 대한 성찰이 담겨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부터 영화에서의 '시'는
'인생'이라는 단어로 대체되어 들려왔다. 어렵고 힘들어도 한자 한자 적어나가며, 시상을 위해 일상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려는 노력 끝에 쓴 자신 만의 시.

 예고없이 닥쳐오는 불행 속에서도 한 편의 시를 완성해나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는 것은 마음이 아팠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가슴이 시리던 장면은 마지막의 배드민턴을 치던 장면이었다. 그 상황에서도 멈추지 않고 최선을 다해 배드민턴을 치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글로는 표현하기가 쉽지 않은 큰 이야기를 접하고 나서야 자신에게 물어본다.
'나는 나 자신의 시를 쓸 마음을 먹었나? 시 쓰는 것이 어렵다는 핑계로 미루어두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전까지의 이창동 감독의 영화 중 가장 좋아하던 영화가 '박하사탕'이었다면, 이제는 '시'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가까이 두고 힘들 때마다 보고 싶은 커다랗고 먹먹했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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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녀 (2010)

경험한영화 murmur 2010. 8. 18.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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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차별적인 비웃음이 싫다

 임상수의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그렇지만 신작이 나오면 이상하게도 극장에서 보는 경우가 많다.
보고 나면 무엇인지 모를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며 돌아서지만, 신작이 나오면 '보고 욕하자'라는 심정으로
극장으로 달려가는 패턴의 반복이랄까?

 그 중에서도 하녀는 가장 안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내가 그동안 왜 임상수의 영화를 좋아하지 않았는지
깨닫게 된 영화이니까.

 현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대표성을 지니지는 못하는 환상의 공간에서는 무엇이든 넘치는 모습이다.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절대적인 부는 철저히 계산된 배치 안에서 빛을 발하고, 그 안의 등장인물들은 강렬한
감정에 가득차 부딪친다. 잘 계산된 인상적 장면들과 감정을 고취하는 음악까지 모든 것이 영화 안에 가득차 있다.
단 하나, 누군가를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을 제외하고는.

 물론 모르는 것은 아니다. 이 영화는 따스한 희망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만들어 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와는 반대로 차가운 현실을 비웃으며 보여줌으로서 메세지를 전하고자 하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 차가움과 비웃음의 시선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등장인물 중 누가 비웃음의 대상이었나?
무엇을 위한 차가움과 비웃음이란 말인가?

 상처를 치료하는 데 수반되는 고통은 아프더라도 참아야만 한다. 하지만 치료를 위한 고통이 아닌, 고통만을 위한 고통은
대다수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나에게는 하녀에서 느껴지는 차가움과 비웃음이라는 시각이 목적이 없는,
비웃음 그 자체로 느껴져서 불편했다.

 아무리 현실적이지 않게 느껴지는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해도, 결국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현실의 모습이었을텐데
가해자나 피해자나 방관자나 다 멍청이들이고 달라질 것은 없을 거야 라는 썩소로 가득한 목소리가 싫었다.

 
posted by 아쌀

[전주국제영화제] 10월(October)

경험한영화 murmur 2010. 5. 18.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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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전영화 임에도 인상적인 10월 혁명의 모습

 이 영화는 일종의 광고영화다. 러시아 10월 혁명 10주년을 기념하여 러시아 공산당의 지시로 만들어진 선전영화이니,
그 내용이 정치적인, 그것도 한쪽으로 치우쳐 있는 것을 예상해 볼 수 있다. 실제로도 좋은 놈/우리편 VS 나쁜 놈의
구도로 영화가 진행되어, 10월 혁명에 대한 지식이 있다면 충분히 예상가능한 내용으로 영화는 진행된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는 충분히 인상적이었다. 군중 장면에서 느껴지는 수많은 사람들이 내뿜는
에너지(이런 에너지는 결코 CG로는 얻을 수 없는 것이다)와 기억에 강하게 남는, 인상적인 장면들이 선전영화임을
알면서도 '불끈'하게 만든다. 감독이 결정하고 해석할 수 있는 폭이 적음에도 인상적인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에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비록 러시아 10월 혁명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서 수동적으로 따라갈 수 밖에 없었던 점은 아쉬웠지만 기대 이상으로
인상적이었던 경험.

   
 
posted by 아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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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압박감과 신경증에 짓눌린 영웅의 서사시

시원한 폭력 액션물인줄 알았는데, 뒤통수 제대로 맞았다. 보는 내내 무겁고 신경증적인 분위기에 압도되어 있었다.
북유럽을 배경으로 '원 아이'라는 영웅의 모험(?)을 그린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왜 '아귀레, 신의 분노'가 떠올랐을까?
광활하다 못해 황량하기까지 한 북유럽의 풍경은 아름다움보다는 고립감과 무력감을 전해준다. '아귀레,신의 분노'에서
등장인물들을 미치게 만들던 아마존 정글처럼 발할라 라이징의 풍경 또한 등장인물들에게 영향을 주어 신경증적인 상태로 몰아 넣는다.

 단지 풍경만이 등장인물들을 짓누르는 것은 아니다. 운명이 등장인물들을 끝으로 몰아넣음에도, 등장인물들은 운명을 바꿀 수 없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일 뿐이다. 주인공 또한 자신의 운명을 따라갈 수 밖에 없지만, 자신의 운명을 알면서도 말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안내문구에도 나와있듯 폭력의 강도도 상당히 강하다. 일반적인 액션영화에서 느낄 수 있는 쾌감은 없다. 그저 무자비한 살육의 에너지가 넘칠 뿐. 그래서 그다지 많지 않은 폭력 장면의 충격은 더욱 강하게 느껴진다.

 차갑고 황량한 풍경과 등장인물들을 짓누르는 운명, 무자비한 폭력이 뒤섞인 이 어두운 서사시는 컬트적인 개성이
느껴지는 멋진 작품이었다.

 

posted by 아쌀

[전주국제영화제] TO

경험한영화 murmur 2010. 5. 12.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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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적이기보다는 낮설은

  To의 첫 인상은 낮설음이었다. 일반적인 재패니메이션을 예상했는데, 의외로 3D CG로 이루어진 작화에 낮설음을
느꼈다. 그리고 이 낮설음은 끝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SF라고해도 그 모습을 최대한 리얼하게 보여줄 수도 있고, 반대로 더욱 환상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
하지만 To가 택한 3D CG는 이도저도 아닌 느낌이었달까? 리얼함이 필요한 부분에서는 환상적인 느낌을,
환상적인 느낌이 필요한 곳에서는 필요 이상의 리얼함을 가져다 주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영화는 두가지 에피소드로 나뉘어져 있는데, 너무 전형적인 느낌의 첫번째 에피소드보다는
조금 더 환상적인 분위기의 두번째 에피소드가 마음에 들었다. 두 에피소드 모두 급마무리하는 듯한 해피엔딩이 아쉬웠지만.

 원작만화를 제대로 보지 못해 비교를 하기는 힘들지만, 기대에 못미친 아쉬운 작품이었다.
3D CG만 아니었더라도...

 
posted by 아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