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잡담

의미없는 murmur 2012. 7. 6. 14:43

1. 최근에 마신 가장 인상적인 한 잔.

 

 단연코 히타치노 네스트. 일본의 소규모 양조장에서 만든 프리미엄 맥주라는 소개보다는 병 디자인에 끌렸다.

한병에 9000원이 넘는 말도 안되는 가격과 신세계 백화점에서나 구할 수 있다는 접근성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걸 사온 나도 참 대단한 놈이라는 자학 섞인 감탄도 잠시. 진하고 풍부한(진부한 표현이지만 정확하다) 맛 앞에서 정신줄을 놓아버렸다.

4가지 종류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Espresso Stout". 단순한 흑맥주나 비어프레소와는 다른, 커피와 맥주의 완벽한 조합이었다.

나 자신에게 선물해주고 싶을 정도로 인상적이었던, 하지만 가격이 부담스러워 다른 사람에게 선물받고 싶은 녀석이다.

 

2. 가장 빈번하게 만나는 주종.

 

 맥주의 계절이라는 뻔한 이야기는 무시하더라도, 맥주 사랑은 멈출 줄을 모른다.

작년의 일본여행 이후 커진 맥주 사랑은 고착화되었다.

안주가 있어도 없어도, 한잔에 털어도 음미하며 마셔도, 톡쏘고 싱거운 국산이나, 비싸고 고르는 재미가 있는 외제나 무엇이든 좋다.

거기에 점점 맥주 주량이 약해져서 이젠 배부르기 전에 잠들어 버리는 것도 좋다. 마시는 양에 상관없이 알딸딸해지니 경제적이다.

맥주 중에도 최근에 삘꽃힌 건 칭따오. 칭따오와 양꼬치 조합은 정말이지 참을 수가 없다.

이런 생각으로 살아가다보니 풍만한 매력을 풍기는 몸이 부록으로 따라오는 것은 예상치 못한(예상하기 싫은) 효과.

 

posted by 아쌀

책 잡담

의미없는 murmur 2012. 7. 6. 14:19

1. 작년 11월의 글을 보니

 

 책을 더 이상 사지 말자. 라는 글이 있더라.

8개월이 지난 지금의 상황은

"제발 책을 더 이상 사지 말자!!"

망할 50% 할인과 중고책. 사놓고 안 읽은 책만 해도 30여권.

올해는 더 이상 안사도 될 정도이지만, 서점을 갈 때마다 술을 끊은지 이틀 된 주정뱅이처럼 극도의 흥분상태가 되어버리니

그야말로 문제다.

 

2.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읽기 부담스러웠던 책이었다. 하지만 끝까지 다 읽을 수 있었던 건 주인공인 스밀라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살아있는듯한, 매력적인 주인공.

고생하는 듯하면서도 내가 좀 짱이라는 듯한 메세지를 풍기는 유형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매력있는 주인공.

 

3. 야만스러운 탐정들

 

 스밀라의 마지막 장을 덮자마자 읽기 시작한 로베르토 볼라뇨의 소설은

(아직 300페이지밖엔 읽지 못했지만) 재미있다!

하루 만에 책을 독파할 정도의 재미라기 보다는, 페이지 수에 상관없이 읽는 순간순간이 즐겁다.

묘하게 얽히고 설키는 진행이 인상적이다. 한문장 한문장을 읽으면서 다음이 궁금해지는, 오랜만에 느껴지는 설레임.

끝까지 읽어봐야겠지만 이대로라면 볼라뇨는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하나가 될 것 같다.

 

 

 

 

posted by 아쌀

막장이 땡기는 날엔 차지맨 캔.

의미없는 murmur 2012. 4. 6. 17:06

 

이건 좀 짱인듯. 주인공이 너무 쿨하다.

볼가 박사님 지못미 ㅠㅠ

내가 태어나기 전에 나온 애니메이션이라는 것도 충격과 공포!

 

posted by 아쌀

사진찍히기

의미없는 murmur 2012. 4. 3. 22:51

 

 나는 사진에 찍힌 내 모습이 싫다.

항상 부자연스럽고 억지스러운,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을 확인하는 것은 기분좋은 일이 아니다.

그러다보니 사진에 찍히는 것을 싫어하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나오지 않는, 다른 사람이 찍은 사진을 보는 것은 좋아한다.

나와는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 - 지나버린 순간이어서 더욱 아름다운 - 사진을 보며 감탄을 하다 보면,

나에게도 지나버린 아름다운 순간들이 있었을 거라는 생각에 아쉬워진다.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한다.

누군가 숨어 내 모습을 찍는다면, 어떤 모습이 찍혀있을까? 그 사진을 보며 난 어떤 것을 느낄 수 있을까?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내 모습이라고는 텅 빈 모습으로 거리를 돌아다니거나,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모습 뿐.

하지만 나의 다른 모습을 찍어 줄 지 누군가가 있을 지 모른다는 기대를 한다.

그 사진에 나의 일상 속 아름다운 모습이 있을 지 모른다는 기대를 하곤 한다.

 

 

 

posted by 아쌀

위험한 밤

의미없는 murmur 2012. 2. 28. 23:32
맥주로 눅눅해진 머리.

잘 넘어가는 하루키 잡문집.

어제 보었던 토리노의 말.

랜덤 플레이임에도 두 곡 연이어 들리는 백현진 목소리.

이런 밤은 위험하다.

오늘 밤은 특히 더 길 것만 같다.
posted by 아쌀

놀이터 이야기

의미없는 murmur 2012. 2. 26. 21:04

 옛 동네에 가서 들른 놀이터. 놀이기구들을 보다보니 어릴적 생각이 났다.

 그네를 타고 멀리 뛰기를 하다 다쳐 이마가 까졌던 생각도 나고,
미끄럼틀에서 빨리 내려오려 안달하던 모습도 생각이 났다.
50 m 떨어진 곳에 있던 '다른 놀이터'는 더 크고 기구도 더 많았는데도, '우리 놀이터'에서만 놀던 기억도 났다.
항상 쇠사슬로 잠겨진, 공중변소에는 나쁜 사람이 있다고 해서 무서워하면서도 궁금해하던 기억도 났다.
5~6개의 놀이기구와 모래 뿐인 놀이터 안에 내가 그렇게 많이 담겨져 있었다니 놀라웠다.

 기억을 살리려 시도해 본 미끄럼틀은 당연히 탈 수 없을 정도로 작아졌지만,
그때처럼 미끄럼틀을 탈 수 있었다면 무엇인가 더 찾을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이 든다.

posted by 아쌀

내가 살았던 곳은 더러웠다.

의미없는 murmur 2012. 2. 8. 14:13


 대학교 때 화성으로 이사하기 전까지, 나의 세상은 강동구 고덕동과 상일동이었다.
유치원 때부터 대학교 초반까지 지하철 1정거장 차이나는 두 동네안에서 살아왔다보니, 어릴적의 추억을 찾기가  편하다.
지하철 5호선 종점에서 내려 2~3시간만 헤메이면 되거든.

 추억이라는 건 완벽하게 덧칠이 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좋았던 일은 더욱 좋게,  안좋았던 일은 딱히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의 덧칠.
그래서 지쳐있던 어느날 추억을 찾아 그 동네에 갔다.

 무서운 동네에서 술집과 주정뱅이 많은 동네(천호동파!)로 바뀌어버린 천호동에서 출발해서, 보세 옷가게와 항상 신고 싶었던 나이키 매장,
마지못해 성가를 불렀던 교회가 있던 명일동을 지나고, 중고딩들의 탈선 알선소였던 고덕역 뒤 학원 거리에 도착하기까지
많은 곳을 가고 많은 것을 찾아본다. 바뀐 것이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남아 있는 것을 확인하면 기분이 좋았다.
떠오르는 추억들은 따뜻하고 밝았다.
 졸업 후 처음 들어가본 고등학교에서 바뀐 시설에 놀라고(남여공학이 되었다!),
그럼에도 남아있는 학교 특유의 분위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나오다 보니 어느새 중학교를 보낸 동네에 도착한다.

 그런데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동네가 작고 더럽다는 느낌. 특히 더럽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 느낌은 살던 집 건물에 도착하니 더욱 강해졌다. 
여전히 그 자리에 있지만 너무나 더러운 모습을 보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 더러워진 것이 아니야. 원래 더러웠던 거야. 난 이렇게 더러운 곳에서 살았던 거야'

 머리 속이 어두워졌다. 그 집에서 있었던 좋지않았던 일과 감정들이 되살아났다.
밝은 색으로 칠해진 덧칠이 벗겨지니 그 속에 남아있던 불안, 슬픔, 외로움이 남아 있는 것이 보였다.
난 큰 소리로 울고 싶어졌다.

 그 다음부터는 어디를 가도 덧칠이 벗겨지기 시작했다.
밝아보이는 곳은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았고, 자세히 보면 얼룩이 보였다.
과장되게 칠한 원색 뒤의 얼룩을 찾는 순간, 덧칠은 벗겨졌다.
나는 예상치 못하게 추억이 아닌, 기억을 찾아냈다. 그리고 지쳐버렸다.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경험을 글로 남기는 이유는 내가 찾은 기억을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덮어버리고 싶지 않아서다. 
나와 내 가족들이 그때 힘들었다는 것,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잊고 싶지 않다. 
 
posted by 아쌀

태백산맥을 읽는 건 힘들다.

의미없는 murmur 2012. 1. 30. 22:41


책이 지루하거나 문장이 답답한 건 아니다.
오히려 더욱 몰입이 잘 되는 전라도 사투리가 인상적이다.
그런데도 읽기에 힘이 드는 건, 단순한 소설이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어서 일거다.

지금까지도 사라질 줄 모르는 강렬한 감정의 원형을 만나는 것 같아
조금만 읽어도 지치게 된다. 읽기위한 마음의 에너지가 필요한 책이랄까?
그 강렬한 감정과 이념의 흐름 속에서 길을 읽기가 힘들어진 요즘의 상태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posted by 아쌀

순화되어지는 취향들.

의미없는 murmur 2011. 12. 9. 20:13

 몇 캔의 산토리와 보드카 토닉 한가득으로 눅눅해진 머리로 '크래쉬'를 꺼내 들었다.
단 20 페이지를 읽고 나서 책을 덮을 수 밖에 없었다.

크로넨버그의 영화를 보아 예상을 했지만, 너무 세더라.
욕지기를 느끼면서 책을 덮고 생각한다.
'정말 순해졌구나 나도'

예전같으면 그 지독함이 나를 매혹했을텐데, 이제는 그것이 나를 피하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
이게 좋은 의미의 변화인지, 나쁜 의미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지금 내가 알 수 있는 건 내가 예전과는 다르다는 것.
그리고 앞으로도 달라지게 될 거라는 것 뿐이다.



posted by 아쌀

책 잡담

의미없는 murmur 2011. 11. 7. 22:28

1. 장편에 빠지다.
 난데없이 읽기 시작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읽는 재미가 있었다.
마치 무협지를 읽는 듯한 엄청난 속도로 읽다보니 어느새 20권. 10여권만 더 읽으면 끝이다.
그 와중에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읽고 나서 보면 좋다던 "무사"는 다 읽었고, 무사를 다 읽을때 발매된
"은하영웅전설"도 11권 째를 읽고 있다. 지금까지 읽은 책의 수는 39권.
남은 건 "은하영웅전설" 4권에 "도쿠가와 이에야스" 12권, 그리고 태백산맥이 10권.
적고 나니 참 어이없는 분량이다.

2. 커피전문서적들.
 그 동안 커피전문서적들을 계속 사들였지만, 근래 산 책들은 좀 다르다.
이전에 산 책들보다 많이 비싸거든. 물론 책의 내용은 만족스럽지만, 가끔은 '그래도 이건 좀 심하잖아'라는
생각에 입을 삐죽 내밀게 된다. 생각이 깊어지는 밤에는 이건 내용을 위한 소비가 아닌,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한 자기위안용 소비가 아닐까라는 뜨금한 생각마저 든다.

3. 책은 잠시 그만.
 말 그대로 책의 구입을 줄여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내가 쓰는 가장 큰 지출이 술과 책인데, 술은 줄이려고 계속 노력중인데 비해, 책구입은 의외로 멈출줄을 모른다.
잠시 알라딘과는 안녕해야지 라고 다짐하는 순간, 하루키의 수필이 새로 나왔다는 문자 한통이 날라온다.
독서도 의외로 값비싼 취미라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posted by 아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