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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사의한 힘으로 가득찬 솔직한 선동영화

 보는 내내 옆에 앉은 사람이 신경쓰였다. 몸을 뒤틀고 썩소를 날리고 일행과 수근거리는 옆 자리 사람에 짜증이 나야
정상일텐데, 왠지 이해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도그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
'이 말도 안될 정도로 엉망인 영화는 뭐야?'
툭툭 끊기고 난데없는 장면들이 반복되는 편집, 손발이 오그라드는 어색 그 자체의 연기와 의미를 알 수 없는 음악,
이건 뭐야 싶은 이야기까지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 중반까지 계속 오그라든 손발을 억지로 펴면서 볼 정도로.

 근데 이 영화 뭔가가 느껴진다. 이야기도, 연기도, 음악도, 편집도 개판인데 이상하리만큼 날 것의 에너지가 느껴진다.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알 수 없지만 점점 강렬하게 느껴지는 에너지. 어리둥절해 있던 중 갑자기 깨달았다.

이 영화는 일반적인 영화가 아니구나. 순수하게 선동을 위해 만들어진 영화로구나.
브라질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각 계층을 대표하는 인물들이 등장하는 친절한 구성도, 그들이 내뱉던 대사와 행동들도,
영화 내내 끊임없이 불리워지던 민초들의 노래도 선동이라는 목적을 위해 취해진 너무도 솔직한 방법들이었구나.
그리고 그 선동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잘만든 영화의 기준이 아니라,
민망할 정도로 솔직한 태도에서 느껴지는 날것의 에너지였구나.

 일반적인 영화의 기준으로 보면 이 영화는 악몽 또는 (정말 후하게 점수를 준다해도)정말 못만든 컬트 영화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이 영화만을 위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선동이라는 목적을 위해 솔직함을 도구로 삼아 날 것의 에너지를 만들어 낸 것을 직접 확인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인상적인 경험이다. 그 선동 메세지에 동의하던 아니던간에 충분히 인상적인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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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이 빠졌다고 해도 구관이 명관


 좀비 영화와 함께 반평생을 살아온 조지 로메로의 또다른 데드 시리즈.
최근의 대세인 스프린터 좀비와는 달리, 조지 로메로의 좀비들은 여전히 느리다.
조지 로메로의 좀비들은 느릿느릿 걸어다녀서 주인공들의 갖은 공격에 굴욕적으로 당하기만 하지만,
어느샌가 주위를 둘러보면 좀비로 가득차서 빠져나갈 길이 없어지는 압박감을 선사해준다.

 그래도 기존의 시리즈와는 약간 다른 점이 있는데, 좀비에 물리지 않고 자연사 또는 사고사하는 경우에도
좀비로 변한다는 것. 무조건 죽으면 좀비가 되기 때문에 여기저기에서 헤드샷이 난무한다.
좀비를 봐도, 좀비한테 물려도, 총을 맞고 죽어도 헤드샷으로 마무리해야 하는 것이어서, 고어에 관심이 있는 팬들에게
약간의 서비스가 추가된다고 할까. 매력적이지는 않지만 흥미로운 설정이다.


 이야기는 이전 데드 시리즈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좀비보다 무서운건 사람이라는 이야기.
좀비를 없애야 할 괴물로 그리는 일반적인 좀비영화와는 달리 서바이벌 오브 더 데드에서 좀비는
다르지만 함께 살아가야할 존재로 그려진다. 하지만 이번에도 사람들간의 의견 차이로 인한 대립이
파국을 불러온다. 좀비를 모두 없애려는 자와 좀비와의 공생을 시도하는 자(비록 방법이 잘못되기는 했지만)의
대립을 그리고 있는 서바이벌 오브 더 데드는 익숙한 장르 영화의 틀 안에서 약간은 정치적일 수 있는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비록 주인공 일행의 역활이 미미하여 감정이입이 되지 않고, 하고자하는 이야기가 두루뭉술한 감이 있어
이전 작품에 비해 아쉽기도 하지만, 좀비와 반평생을 함께해온 장인의 공력이 느껴진다.

 이제는 익숙해진 좀비라는 소재를 통해 장르영화의 재미와 약간의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는 조지 로메로와 그의 좀비들.
그가 그리는 좀비의 모습처럼 그의 영화도 느리지만 계속 진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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킥 애스(KICK ASS)

경험한영화 murmur 2010. 4. 29.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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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히어로에 대한 신선한 질문과 뻔하지만 시원한 액션의 만남

 이 영화 뭔가 이상하면서도 재미있다.
우선 이상한 점부터 말하자면 지금까지의 슈퍼 히어로 영화와는 다른 물음을 던진다는 것.
대부분의 슈퍼 히어로 영화에서는 힘을 가진 후의 선택과 책임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면, 킥 애스는 이렇게 묻는다.
"힘은 어떻게 가지는 거야?"
타고나거나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해 슈퍼 히어로가 되는 것이 아니라, 평범은 커녕 찌질한 녀석이
타의가 아니라 자의로 시작하게 되는 슈퍼 히어로의 생활이라... 확실히 일반적인 슈퍼 히어로 영화와는 다르다.

 근데 이 영화 뻔하기도 하다. 상황의 힘이 만들어 낸 히어로가 등장하거든.
(이 영화를 본 대부분이 팬이 되어버리는)힛걸은 무자비하게 총알과 칼날을 날려댄다. 주인공이지만 히어로같지 않은 능력의 주인공보다는, 힛걸이 진정 슈퍼 히어로의 모습을 보여준다고나 할까?

 이 신선한 주인공과 전형적이지만 멋진 영웅의 조화가 이 영화를 재미있게 만든다.
이 영화에는 시원시원한 액션과 코믹 북을 연상시키는 감각적인 편집, 가끔씩 나오는 B급 감성의 유머, 달리는 느낌이 일품인 음악까지
재미를 증폭시키는 요소가 많이 있다. 하지만 이 영화를 진정으로 재미있게 보려면 이 이상한+뻔한 캐릭터 조합을 눈여겨 보는 것이 좋을 듯.
주인공과의 정서적 일치감을 원하는 관객이나 또는 슈퍼 히어로 영화의 클리쉐를 사랑하는 관객 모두 재미있는 경험이 될테니
(물론 이 영화는 슈퍼 히어로 코믹스를 기반으로 하는 영화이니까 그에 대한 기본 지식이 있다면 좀 더 재미있게 볼 수 있을거다).

 예상보다 잔인하고 야한 장면이 나오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명랑한 B급 영화와 같은, 시원시원하게 볼 수 있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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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반게리온 :파(破)

경험한영화 murmur 2010. 1. 31.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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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팬들은 싸우면서 자란다

 에반게리온 :파의 타겟은 명확하다. 에반게리온에 열광하던 모든 팬들.
이상하지만 멋있는 에반게리온의 TV판부터 극장판까지 모두 찾아본 팬들.
그들을 대상으로 에반게리온: 서가 에반게리온의 세계는 아직도 성장 중임을 알리는 역활을 했다면,
에반게리온: 파는 성장에 수반되는 성장통과 함께 본격적인 변화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미 에반게리온 :서에서 약간은 달라진 이야기와 인물들, 그리고 새로 그려진 사도와의 전투장면을
만날 수 있었다면, 에반게리온 :파에서는 크게 달라지는 이야기와 인물들에 추가된 새로운 인물, 그리고
압도적인 박력의 전투장면을 만나게 된다.

 거대하게 형성된 에반게리온의 세계관을 유지하면서도 큰 폭의 변화를 보여주는 이번 작품에서
가장 인상깊은 변화는 인물들간의 감정의 변화일 것이다. 서로의 AT필드 앞에서 멈추기를 반복하던
소년소녀들은 점차 AT필드를 깨는 방법을 깨달아 가는 것처럼 보인다. 이전보다 더욱 서로와 소통하려
애쓰고 상대를 덜 거부하는 모습이 생소하면서도 인물들의 성장을 바라보는 것 같은 묘한 감흥을 불러 일으킨다.

 변화하는 인물들만큼이나 이야기도 약간의 변화를 보이는데, 복잡하고 명확하지 않은 이야기 진행은 변화가
없기에 팬들에게는 충분히 흥미를 유발할 만 하다. 다만 소년소녀들을 더욱 가혹하게 전장으로 이끄는 상황들을 바라보는 것은 안타깝다.

 전투장면 또한 더욱 과격해져서 이후 발표될 에반게리온 :Q에서는 어느정도의 수위를 보여줄 것인지
궁금할 정도다. 폭주하는 에바의 액션 장면을 좋아하는 팬이라면 두 손들어 환영할 듯 하다.

 하지만 변한 것은 작품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에반게리온의 팬들이 가지고 있던 여러가지 감정과 의미가
에반게리온 :파를 통해 변화하게 되는 것이다. 원작과 비교하던, 특정 등장인물에 집중하던,
또는 숨겨진 이야기의 매듭을 풀려고 노력하던 간에 팬들 각자가 가지고 있던 여러가지 의미가
에반게리온 :파를 통해 바뀌게 된다.
작품 안의 변화와 작품을 바라보는 팬들의 변화가 만남으로 인해 더욱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에반게리온의 세계가 새로운 변화 또는 파괴를 통해 성장하는 동시에, 이를 보는 팬들의 감정과 에반게리온이
가지고 있던 의미도 함께 변화/성장하게 되는 경험은 흔치않으면서도 매혹적인 것이기에
에반게리온의 팬이라면 다음 작품이 될 에반게리온 :Q를 무력한 마음으로 기다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까지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이라면 80%는 에반게리온의 팬이 분명할터.
무엇을 망설이나? 팬이라면 무조건 보는 거다. 이건 고민할 문제가 아니다.

posted by 아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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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두 가지의 사랑이 만나는 아프면서 아름다운 접점

 사랑이란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가진다.
순수한 사랑을 믿는 남자와 사랑의 아픔을 경험한 여자의 각기 다른 사랑이야기.

 어렵고 지루할 것이라는 생각과는 달리 단순하면서도 힘이 있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건조하지만, 마지막 장면의 여운은 오래 남았다.

 출연배우의 인터뷰를 보니 마지막 장면은 해피엔딩이라고 말하던데, 난 왜 해피엔딩처럼 느껴지지 않았을까?
마지막 장면에서 그녀가 본 것은 희망이었을까 놓쳐버린 것에 대한 깨달음이었을까?
다른 두가지 방향으로 해석이 가능하던 마지막 장면이 기억에 남는,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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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로드(The Road)

경험한영화 murmur 2010. 1. 11.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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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착한 사람들이야. 가슴 속에 불씨를 품은."

 '코맥 멕카시의 더 로드'가 영화화된다는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잘할 수 있을까?'였다.
지독히도 어두운 세상에서 서로의 존재만을 의지하며 헤메이는 부자父子의 이야기를 영화화하기는
쉽지 않을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흥행을 의식해 말도 안되는 각색을 해서 원작소설과는
다른(원작소설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영화가 나오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

 하지만 주연배우의 이름을 듣는 순간 이 영화는 최고의 기대작이 되었다.
비고 모텐슨.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폭력의 역사'와 '이스턴 프라미스'에서 숨겨져 있는 어둠을 드러내는
열연을 펼친 그라면 더 로드의 그 묵직한 아버지 역활을 멋지게 해낼 수 있을거야라는 맹목적인 믿음.

 그리고 영화관에서 보고난 후 영화 '더 로드'는 나에게 코맥 멕카시의 원작소설이 가진 힘과
비고 모텐슨이라는 배우에 대한 믿음에 대한 만족스러운 응답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영화가 되었다.

 끝없이 펼쳐지는 회색빛 세상의 모습과 부자를 위협하는 사냥꾼들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가슴을 짖누른다.
유일하게 찬란한 빛으로 그려지는 회상장면조차도 그 아름다움으로 인해 절망적인 분위기를 더해주고 있다.
 약하고 외로운 두 사람의 끝이 보이지 않는 헤메임과 가슴 속의 불씨를 꺼지지 않게 하려는 발버둥을
지켜보는 것은 가슴아프다. 영화가 끝나도 우린 그 불씨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불씨를 위협하는 어둡고 거친 세상 속에서도 계속 길을 따라 가는 주인공들을 통해
절망 끝에서도 끝까지 남아있는 희망을 찾아볼 수 있다.
위험하고 끝없는 길 위에서 약하고 외로운 부자에게는 서로가 마지막 남은 신Lord이였겠지.
그 신이 가슴 속에 남아 있는한 불씨는 꺼진 것이 아니다라는 희망을.

희망이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압도적인 폐허 속에서 조그만 희망을 확인하는 부자의 여정을 멋지게 그린 '더 로드'.
코맥 멕카시의 소설을 감명깊게 읽었다면 불씨를 운반하는 여정을 다시 확인할 가치가 있다.

p.s 비고 모텐슨은 기대대로 가장 외롭고 나약하면서도 강해져야만 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멋지게 연기했다.
     착한 사람과 약한 사람, 나쁜 사람이 공존하는 그 남자의 모습을 보는 것은 가슴아팠다.
     닉 케이브의 음악도 과하지 않아 좋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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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의 영화들

경험한영화 murmur 2009. 12. 19. 17:54

올해 본 영화 중 기억에 남는 영화들을 중얼거려본다.

1. 큐어(C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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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본 가장 무서운 영화.
(자세한 내용은 여기에)

















2. 카모메 식당 & 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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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실도피를 위한 완벽한 판타지.
(자세한 내용은 여기에)

















3. 커피와 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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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와 함께하는 담배는 어떤 느낌이길래?
궁금해진다.

















4. 더 리더: 책읽어주는 남자(The Rea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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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던 소년과 그 내용에 빠져들던 여자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에)

















5. 불신지옥 & 디스트릭트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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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볼만한 이야기를 담은,
충실한 장르영화.
(자세한 내용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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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갈라지는 두 형제의 모습에서 역사를 보다.

아일랜드의 독립운동에 엃힌 두 형제의 이야기를 그린 켄 로치의 영화.
조국의 독립이라는 동일한 목표를 가진 동지였던 두 형제가 결국 적이 될 수 밖에 없는
모습에서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은 우리의 역사를 떠올릴 수 밖에 없다.

의외로 이야기의 깊이나 말하고자 하는 내용도 켄 로치의 영화라는 후광에 비해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어떤 부분은 조금더 이야기가 필요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부족해 보이기도 했다.
이는 비슷한 내용을 지닌 영화를을 많이 접할 수 밖에 없었던 한국사람이기 때문이겠지.  

그럼에도 이야기에는 힘과 울림이 있었다. 보편적인 감정을 자극하는 힘과 울림이.
충분히 예상가능하지만, 그럼에도 피할 수 없는 그 묵직한 감정들.
동지에서 적으로 변하면서 갖게 되는 증오의 메카니즘을 바라보는 것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우리의 역사와 간접경험으로 인해 더욱 날카롭고 냉정하게, 그리고 더욱 아프게 다가왔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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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큰 임브레이스 (BROKEN EMBRACES)

경험한영화 murmur 2009. 12. 15.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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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붉고 뜨거운 알모도바르

한마디로 말하자면 브로큰 임브레이스는 약간 아쉬웠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영화다.
그의 영화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 영화에도 뒤얽힌 감정만큼이나 뜨거운 피를 가진 사람들이 등장한다.
모노톤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붉은 색과 같은 인물들.
그 뜨거움이 좋았다. 하나의 감정에 이끌려 앞뒤를 보지않고 달려가는 등장인물들의 뜨거움이 좋았다.

영화 속의 영화라는 설정도 인상적이었는데, 두 남녀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영화와 현실을 오가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지나치게 이야기의 완결을 위해 설명을 많이 하는 것 같아, 후반으로 갈수록 처지는 느낌은 아쉬웠다.
영화의 느낌이 너무 붉은 것 같은 것이었을까? 설명으로 인해 뜨거운 감정과 분위기가 가라앉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쉬운 부분이 있더라도, 브로큰 임브레이스는 알모도바르의 영화였다.
그 뜨거운 인물들. 그 뜨거움을 주체못하고 파멸을 향해 달려가기도 하지만,
생동감이 넘치는 인물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차가워진 심장에 약간의 온기가 전해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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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경험한영화 murmur 2009. 11. 5.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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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인공의 눈빛처럼 젖은, 파주의 안개와 같은 영화

갑자기 추워진 날씨때문인지, 서늘한 영화가 보고싶어졌다.
흐릿한 안개를 뚫고 파주로 돌아오는 여주인공의 모습으로 시작하는 파주를 보고나서의 느낌은
안개 속에 있는 것 같았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은, 축축할 정도로 습도가 높은 안개 속.

광고와 같이 형부와 처제의 불륜과 그에 수반하는 끈적끈적한 장면이 주가 되는 영화가 아니다.
서로에게 닿지 않고 고립된 두 남녀의 이야기이자, 죄의식과 희생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야기 진행은 친절하지 않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은 불편하기도 하지만,
밋밋할 수 있는 이야기에 긴장감을 준다. 그 긴장감 속에서 보는 이가 이야기를 맞추어 나가야 하는
부분이 쉽지는 않았다. 이해가 가지 않거나 난데없는 주인공의 감정표현에 당황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흐릿하지만 가슴 속을 가득 채우는 감정들.

배우들의 연기가 좋았다. 특히 여주인공을 맡은 서우의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슬픔을 담고 있는 큰 눈망울이 기억에 남는다.
이선균은 전반적으로 담담한 연기로 서우를 뒷받침해주어 균형을 잘 잡아준 느낌이었고
(열정적인 엉덩이 연기는 논외로 하자), 다른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다.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개 속을 걸어본 적이 있다. 안개 속을 지날 때는 불편하고 무섭기도 했지만,
안개를 지나고 나면 가슴 속에 아련한 감정이 남았다.
파주를 보고나서도 그런 느낌이었다. 불편하면서도 가슴 속에 여운이 남던 그 느낌.

 
 

posted by 아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