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집 - 기시 유스케

경험한책 murmur 2009. 7. 31. 11:20
비어 있는 검은 집, 근데 가보고 싶네

 예전부터 재미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검은 집'.
최근에 4,000원도 안되는 가격에 행사를 하길래 덥썩 구매했다.
나름 기대감에 들떠 읽었는데 약간 부족한 느낌이랄까?

 사이코패스라는 소재를 통해 인간의 본성과 죄책감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데, 그 깊이가 얕다.
오히려 주제보다 보험회사에 대한 이야기가 더 깊이있게 느껴졌으니.
(아마 작가가 보험회사를 다닌 경험이 있어 그런거겠지)
 특히 마지막의 그 장광설들, 멀쩡한 바구니에 담긴 썩은 사과가 무서운게 아니라
멀쩡한 사과를 썩게 만드는 썩은 바구니가 무섭다라는 이야기는 힘주어 강조하다보니
갑자기 강의를 듣는 듯한 느낌마저 받았다.
 
 하지만 이런 아쉬운 점에도 불구하고 4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2일만에 다 읽었으니,
흡입력은 대단한 소설이다. 그 중에서도 사이코패스와 주인공이 대치하는 부분에서는
스릴러 영화를 보는듯한 긴박감이 멋졌다.

'뭔가 아쉬운데..'를 뇌까리면서도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만드는 것도 분명한 재능일터.
어쩌면 '검은 집'의 강렬한 흡입력은 얕은 주제에서 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무거운 주제를 깊게 파고들면 읽는 독자도 피곤해서 하루에 200페이지를 읽기는 힘들테지.

 주제의식은 깊어야 한다라는 강박이 없다면, 여름밤을 함께 보낼 가치는 충분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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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파고스 - 커트 보거네트

경험한책 murmur 2009. 7. 23. 16:19

인류의 커다란 뇌를 비웃음섞인 눈으로 바라보다

인류의 모든 문제는 지나치게 커다란 뇌때문에 비롯된다라는 흥미로운 문제제기,
그리고 뇌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인류의 새로운 진화를 다루는 커트 보거네트의 소설.

커트 보거네트에게 기대하는 대로 갈라파고스 역시 풍자와 블랙유머, 수다로 가득 차 있다.
정신없이 엃히는 등장인물들의 뇌로 인한 해프닝들을 따라가는 건 꽤나 재미있다.

책이 너무 정신없다고? 조금만 더 자신의 커다란 뇌를 믿고 페이지를 넘겨보자.
웃기는 듯 날카로고, 수다스러우면서도 하고자하는 말이 명확한 소설을 만나는 일은 자주 있지 않으니까.

posted by 아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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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대한 거대한 조롱과 불신 끝에서 찾는 그 무엇.

그래. 사실 나는 그다지 긍정적인 인간형은 아니다.
모두다 부정적인 인간이 긍정적인 인간보다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는 분위기에서
'나는 부정적인 인간이야'라고 인정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는 부정적인 성향이 강한 인간이다'.

이런 성향은 취향에도 반영이 되어, 무작정 '잘될거야'를 외치는 아름다운 작품들보다는
적당히 부정적이고 어두운 작품들에 매력을 느끼는 편이다.

로맹 가리의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는 이런 내 취향에 잘 맞는 소설이다.
냉정한 문체, 인간에 대한 차가운 시각, 번뜩이는 냉소까지 끝까지 부정적인 소설.
그렇기에 모든 등장인물들의 행동을 차갑게 바라보며 비웃는 로맹 가리의 시각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그 부정적인 에너지를 이용해 다시한번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
부정의 극단에서 오히려 긍정을 찾을 수 있다.

이 부정적인 소설 속에서  인간에 대해 실망할 수 있다. 절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부정적인 에너지를 피하지 않고 직시한다면, 그때부터가 이 소설의 진정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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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이야기 - 얀 마텔

경험한책 murmur 2009. 4. 28.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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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년의 생존을 위한 투쟁, 그리고 그것을 통해 배우는 한 가지

나는 이 책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안좋은 버릇 중 하나는 베스트셀러라면 알아보지도 않고
관심을 접어버리는 것인데, '파이이야기' 역시 이런 내 성향으로 인해 늦게 접하게 된 소설이었다.
좋은 책이라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나와는 안맞을거야'라는 생각으로 읽을 기회를 멀리하던 책이었는데,
50% 할인행사라는 말에 큰 고민끝에 덥썩 집어버렸다. 헐..

그런데 이 책, 예상보다 재미있으면서 의외로 깊다.
주된 내용은 파이라는 소년의 표류기인데, 읽는 사람에 따라 약간의 반전이 있는 표류기이기도 하며,
표류기를 통한 성장소설이기도 하며, 인간과 어떤 '존재'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좋은 소설이 그렇듯)여러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깊은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낸 점이 인상적이다.
파이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소설의 초반부는 약간 지루하기도 하지만,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흡입력있는 전개에 집중하게 된다.

기대보다 더욱 재미있게 읽었던 책. 다 읽었다는 만족감보다는,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읽을 때 어떤 모습으로
다가 올지 궁금해지는 소설이다.

P.S '식스센스' 이후 반전에 대한 압박에 시달리는 '나이트 샤말란'이 영화화를 한다고 하는데,
      이상할 정도로 기대가 되지 않는다. 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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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데기 - 황석영

경험한책 murmur 2009. 4. 9.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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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를 건너는 소녀, 희망을 바라보다.

이 소설을 간단히 요약하면 뭐라 할 수 있을까? 한 소녀의 기구한 인생담? 고통받는 고통의 치유사 이야기?
바리 설화의 현대적 재해석? 읽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의견이 있겠지만 이 책은 흡입력 있는 소설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바리'라는 소녀의 발길을 따라 여러나라를 이동하며 다양한 문제를 바라보게 된다.
 북한의 기근과 그로인한 탈북자 문제, 불법이민, 인종차별, 전쟁까지의 문제들을 바라보며, 모든 문제의
해결은 한가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깨닫는다. 타인에 대한 희망, 그것이 답이라는 것.

이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는 '바리'와 함께 여러 경계를 건너야 한다. 사람 간의 경계, 나라 간의 경계, 산자와 죽은자 간의 경계를.
'바리'의 고생을 보며 안타까워하고 마음을 졸이게 되더라도, 끝까지 '바리'를 떠나지 말고 지켜보길.
그래야 '생명수'가 어디에 있는지 깨닫게 될 테니 말이다.

가슴에 새겨진 한 문장:

"희망을 버리면 살아 있어도 죽은 거나 다름없지. 네가 바라는 생명수가 어떤 것인지 모르겠다만,
사람을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서라도 남을 위해 눈물을 흘려야 한다. 어떤 지독한 일을 겪을지라도
남을 위해 눈물을 흘려야 한다."
           

                                                     
posted by 아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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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하고 깊이있는 질문을 흡입력있는 이야기 속에 녹여낸 소설.

최근에 개봉한 케이트 윈슬렛 주연 영화의 원작 소설.
전체적인 줄거리는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으나, 영화보다 더 심오하고 섬세한 시각이 돋보인다.

개인적인 감정과 역사적인 선택이 결합되는 상황에서 고뇌하는 주인공의 심리적 고뇌를 따라감으로서,
'나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된다.
과연 나였다면 개인적인 감정과 역사적인 선택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었을까? 나였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영화가 사랑이야기에 좀 더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소설은 역사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질문이 강조되어 있어
더욱 깊은 생각을 불러 일으킨다. 전쟁범죄에 대한 세대간의 갈등, 과거의 잘못을 직시하고자 하는 고뇌 등이
나타난 주인공의 독백을 보며 '나는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과거의 잘못을 직시하고 그에 따른 입장을 취하는 것에 대한 최소한의 고뇌도 없는 지금의 현실과 비교할 때 참 씁쓸한 느낌을 주는 질문이다.

하지만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은, 역사적이고 철학적인 질문을 애절한 사랑이야기와 결합하여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230 여 페이지의 길지않은 분량이지만, 이야기의 흡입력은 강하고,
읽고 난 후 가슴에 남는 여운도 길다.

읽는 이에게 다양하고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그럼에도 흡입력을 지니고 있는 좋은 소설이다.

posted by 아쌀

여행의 기술-알랭 드 보통

경험한책 murmur 2009. 3. 25.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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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무엇이고 왜 하는가?

알랭 드 보통이 여행을 하면서 느낀 여행의 여러가지 요소들을 다루고 있는 책.
'여행은 무엇인가? 왜 여행을 하는가? 어떻게 여행을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예민한 시각으로
풀어나간다. 책을 읽으면서 여행이란 단순한 돈과 여유의 문제가 아니며, 여행이 가지는 다양한 요소로 인해
여행은 가치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알랭 드 보통은 그의 다른 책들처럼 예민한 시각과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통해 여행을 바라보고 있으며,
너무 쉽지도 어렵지도 않게, 한발 앞에서 읽는 이를 생각으로 이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알랭 드 보통이 이야기하는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의 시작부터 귀환까지, 여행이 가지는 요소를 놓치지 않는 예민하고 충만한 여행을.

그래 여행에도 기술은 분명히 존재하고, 그 기술을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때 여행은 예술이 될 수 있을것이다.
 
가슴에 새겨진 한문장 :

"때때로 큰 생각은 큰 광경을 요구하고,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장소를 요구한다."

posted by 아쌀

대부(The Godfather)-마리오 푸조

경험한책 murmur 2009. 1. 17.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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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의 영화로 더욱 유명한, 대부의 원작소설.
(사실 영화 대부는 어렸을때 대충 본게 다여서 진가를 몰랐는데,
 얼마전에 우연히 다시 보고 감동을 받았다)

그 감동에 힘입어 원작 소설까지 질러버린 나였으나,
원작소설에 대한 신뢰는 그다지 없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책을 보기 시작하면서 그런 마음은 모두 달아나고,
책을 더 읽고 싶어 안달이 나는 상태까지 경험할 수 있었다.

책의 줄거리는 영화 대부1편과 같다. 그럼 무엇이 다를까?

소설 대부영화보다 더욱 자세한 상황 및 심리묘사가 몰입을 돕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영화를 볼 때 언급되지 않았거나, 간략한 설명으로 지나간 부분에 대한 묘사가 있어,
더욱 이해가 쉽다.

거기에 (영화에서 확인한 것처럼) 줄거리 자체의 힘이 엄청나기 때문에,
몰입도는 최고였다.
(영화를 미리 보았기 떄문에 영화장면과 소설과의 오버랩이 쉽기 때문에 더욱 몰입할 수 있었다)

영화를 보았건 보지 않았건,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추천!


posted by 아쌀

THE ROAD-코맥 멕카시

경험한책 murmur 2008. 6. 24.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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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0 페이지의 절망과 단 한줄의 희망

오랜만에 경험하는 완전한 절망, 이 책안에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버지와 아들을 따라가며 경험하는
끝이 보이지 않는 절망.
때로는 그 어두움에 지쳐 읽기가 부담되기도 하지만, 코맥 멕카시는 독자의 사정 따위는
신경쓰지 않는다.

죽음만이 유일한 희망처럼 보이는 두 사람과 그들이 헤메이는 길을 따라가는 320번의 경험에
익숙해 질 무렵, 조그만 빛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뚜렷하지 않은, 자세히 보지 않으면 빛인지도 모를 희미한 빛.
하지만 그 빛은 완전한 어두움 속에 있기에 더욱 의미를 가진다.

오랜만에 만나는 완전한 어둠이 궁금하다면,
그리고 단 한번의 빛이 가지는 의미가 궁금하다면,
이 책은 읽을 가치가 있다.


함께 있고 싶어요.
안 돼.
제발.
안 돼. 너는 불을 운반해야 돼.
어떻게 하는 건지 몰라요.
모르긴 왜 몰라.
그게 진짠가요, 불이?
그럼 진짜지.
어디 있죠? 어디 있는지도 몰라요.
왜 몰라. 네 안에 있어. 늘 거기 있었어. 내 눈에는 보이는데.

(본문 중에서)
posted by 아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