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카페 중얼중얼

의미없는 murmur 2009. 8. 12. 23:09

1. 가장 맛없는 커피를 만드는 방법 

 언제부턴지 아버지와의 식사 후에는 내가 커피를 만들어 드리곤 한다.
아버지의 식사 마무리는 물 한잔이 아니라 커피 한잔인데,
그 중요한 의식을 내가 담당하게 된 거다.
 
사명감을 가지고 드립, 에스프레소에 카푸치노까지 다양하게 드리고 있는데,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뿌듯하다.

 하지만 요즘 심한 감정의 기복을 경험하고 있는지라 때로는 안 좋은 기분으로 커피를 준비하는 일이 잦아졌다.
귀찮다기보다는 짜증이 난 상태로 커피를 만들고 나면 내가 봐도 맛없는 커피가 만들어진다. 
맛없는 커피를 드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 '조금 더 잘 만들어드릴걸'하는 후회를 하지만, 이미 맛없는 커피는 내 손을 떠난 뒤다.

  커피 한잔에 감정이 담기고 그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것을 보면, 커피를 대접한다는 행위에도 책임감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가장 맛있는 커피는 남이 만들어준 커피, 그중에서도 정성을 담아 타준 커피이고, 가장 맛없는 커피는 정성없이 만들어준 커피라면,
나는 가장 맛있는 커피를 만들어주는 사람이고 싶다. 조금 더 마음과 정성을 담은 커피를 만들어주고 싶다.

가장 맛없는 커피를 만드는 법은 완전히 알았다. 그리고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만들 수 있다.
이제는 가장 맛있는 커피를 만드는 법을 배울 차례다.

2. 카페가 멀어졌다?

 나는 카페를 좋아한다. 맛있는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읽는 것도, 수다를 떠는 것도, 멍하니 생각에 잠기는 것도 좋아한다.
커피의 매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카페라는 공간이 가지는 힘이 나를 카페로 이끄는 것 일게다.
이렇다보니 다양한 카페를 가는 것 또한 나에겐 즐거운 일이다. 책이나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얻어 찾아가기도 하고, 돌아다니다 우연히 보이는 카페에 들어가기도 한다.
‘나만의 카페를 가지고 싶다’라는 꿈이 생긴 후부터 카페를 가는 것은 또 다른 공부가 되었지만,
기본적으로 카페를 가는 것은 나에겐 즐거운 놀이였다.

 그런데 요즘엔 카페를 가는 횟수가 많이 줄었다.
집에서 나가기가 귀찮아 진 것도, 경제적인 부담이 커진 것도, 혼자 카페를 가면 느껴지는 외로움이 싫어진 것도
원인일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더는 카페를 가는 것이 즐거운 놀이가 아닌 것이 된걸까?

 
 나만의 카페가 꿈인 사람이 카페에 가는 것이 즐겁지 않다는 건 좀 문제가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그런 꿈을 가지게 된 이유도 내가 카페를 통해 경험했던 즐거움을 나만의 공간에 구현하고 싶은 욕망 때문 이었는데,
욕망을 만족시키기도 전에 기운이 빠져버리는 모습이라니.
나에게 카페는 경험하고 이해해야할 대상이기도 하지만 그 전에 즐거운 공간이어야 하는데,
경험과 이해에만 집중하다 보니 즐거움을 잊은 것 같다.

 아직도 기억한다.
어느 카페에서 꽃향기가 나는 듯한 커피를 마시며 행복해하던 저녁을. 맛있는 음료와 고립된 듯 이어져 있는 분위기의 카페가 주던 행복을.
그래. 다시 카페로 가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야겠다. 그동안 엄두를 내지 못하던 강릉의 보헤미안도 다녀오고, 맛있는 커피를 대접한다는 곳들도 다니고, 눈에 띄는 카페를 무작정 들어가기도 해야겠다.
가장 즐거운 방법으로 내 꿈과 가까워져야겠다.

posted by 아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