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시간 동안의 버스를 타고 나서 도착한 전주.
이미 한번 와봤던 전주여서 그런 것일까? 발걸음은 자신감으로 가득하다.
40여분을 걸어 도착한 남문시장의 조점례 남문 피순대에서 따로국밥과 소주 한병을 마신 후
(처음 왔을때보다 별로였다. 순대국밥과는 달리 피순대를 맛볼 수 있어 좋았지만, 돼지냄새가 많이 나서 좀 아쉬웠다),
객사로 이동해서 The Caffe에서 커피를 마신 후 중화산동으로 30여분을 걸어 숙소를 잡았다.
영화의 거리에 있던 모텔보다는 더욱 깔끔한 숙소. 무엇보다 욕조가 있는 것이 마음에 든다.

 뜨거운 물을 받은 욕조에 들어가 맥주를 마시며 긴장을 풀고 있다보니 욕조에 대한 생각이 떠오른다.
나는 지금까지 욕조가 있는 집에 살아본 적이 없다. '욕조' 를 '다라이'가 대신 해준 기억만 난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나는 욕조에 꽤나 집착하곤 한다. 숙소를 고를 때도 욕조가 있는 곳과 없는 곳이 있다면
추가요금을 지불하고서라도 욕조가 있는 곳으로 숙소를 정하곤 한다.
아무리 피곤하고 바쁘다고 해도, 아침잠을 줄이면서까지도 욕조에 들어가는 것은 지나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입욕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것은 아닌 것이, 사우나를 가더라도 온탕에 오래 있지는 못하거든.
그야말로 개인적으로 온도와 시간을 조절할 수 있는 '욕조'를 좋아한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언제부터 욕조를 좋아하게 된 것일까?
아마도 욕조 안에 있는 동안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라는 것을 직간접적인 경험을 통해 깨닫게 된 이후부터일 것이다.
욕조 안에서 물장난이나 잠수를 해도, 노래를 불러도, 멍 때리고 있어도, 고민하거나 눈물을 흘리더라도
철저히 나 혼자만이라는 느낌을 깨닫게 되고 난 부터.
욕조 안에서 무슨 행동 또는 생각을 하더라고 괜찮아. 샤워기에서 나오는 깨끗한 물로 씻어버릴 수 있으니까 말이야.
 물론 욕조를 좋아하게 된 데에는 예전 연인과의 추억을 빼놓을 수는 없다.
편안함과 욕망의 사이의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느끼던 미묘한 감정들이 욕조에 대한 집착을 더욱 강하게 해준 큰 요소이기도 하다.
지금은 비록 혼자 맥주나 마시며 청승떨면서 널부러져 있는 공간일 뿐이지만,
나에게 욕조는 과거의 욕망과 현재의 편안함이 맞물리는, 또는 혼자이거나 함께이거나 자극을 주는
흔치 않은 공간이기 때문에 더욱 집착하게 되는 것이겠지.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 홀로 있다는 것은 이런 기분에 면죄부를 주곤 하나보다.
욕조에서 막 나온 물기가 마르지 않은 몸으로 뿌려대는 이 의미없는 글도 편안함과 욕망 사이에서 생겨난,
욕조의 결과물이라고 자위하며 익숙치 않은 침대로 파고들 준비를 해본다.




posted by 아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