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쥐 (Thirst)

경험한영화 murmur 2009. 5. 11.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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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하나의 거대한 낭비다.

최근 가장 큰 이슈가 되고 있는 영화 박쥐. 믿을만한 사람들의 혹평에도 불구하고
'욕할거면 보고나서 욕하자'라는 마음으로 본 박쥐는 개인적으로 실망스러웠다.

박찬욱의 전작들을 나쁘게 보지 않았기 때문에('복수는 나의 것'은 매우 좋아하는 영화다),
어찌보면 스타일 상 크게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 박쥐에 대한 실망이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스타일리쉬한 화면, 건조하면서 기괴한 장면에서 터지는 냉소, 박찬욱 감독 특유의 악취미적인 장면들까지
전작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전작들과 박쥐가 결정적으로 다른 것은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깊이이다.

비록 냉소와 악취미로 둘러쌓여 있더라도, 전작들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명확하고 힘이 있었다.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는 깊이가 있었으며, 영화를 보고나서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힘이 있었다.
또한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돋보이게 하는 수단으로서의 냉소와 악취미적인 장면들은 효과적이었으며,
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수단이 잘 어우러지면서 전작들은 인상적인 영화가 되었다.
(명확한 호불호에도 불구하고 복수 삼부작이 인상적이지 않다고 생각하기는 어려울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박쥐는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명확하지도, 깊지도 않다.
욕망과 죄책감에 대한 이야기? 구원에 대한 이야기? 그것도 아니면 사랑 이야기?
무엇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도, 그 주제에 비해 이야기의 깊이는 너무도 부족하다.
오히려 이야기에 대한 고민보다는 화면을 통해 보여주는 것에 대한 고민이 더욱 깊어보일 정도로.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냉소와 악취미적인 장면들은? 그저 고문일뿐이다.

근데 이야기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대체 왜 이렇게 만든거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명확하지도 않은데,
최고의 배우들과 스텝들, 적지않은 제작비를 들여 개인적 취향임이 분명한 냉소와 악취미를 영화로 만들었을까?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영화였다면, 더욱 더 공감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었어야 했다.
개인적인 취향을 반영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면 더욱 작은 영화를 만들었어야 했고.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박쥐는 개인적인 취향을 거대 제작비로 만든 샘이 되었다.

개인적인 취향으로 만든 영화를 대중들에게 보게하기 위해 동원되는 수단들이란 뻔하다.
김옥빈이 벗었다는 둥 송강호 성기노출했다 등등.
하지만 낚여서 온 관객들은 이 개인적인 영화에 당연히 분노할 수 밖에 없고, 그로 인한 논란도 커지고 있다.

애초에 이 영화는 논란의 대상이 될 만한 영화가 아니다.
자기 색이 뚜렷한 감독이 만든 새로운 영화일뿐이며, 전작들을 본 관객에게는
약간은 아쉬운 작품 정도로 느껴져야 하는 영화이다.

이게 얼마나 커다란 낭비인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도 명확하지 않은, 개인적인 취향으로 가득한 영화를
대중을 생각하며 만든 것처럼 포장함으로서 벌어지고 있는 낭비들.

posted by 아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