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자 - 테렌스 데 프레

경험한책 murmur 2013. 12. 25. 19:14

죽음의 한 가운데에서 보이는 꺼지지 않는 삶의 불빛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다룬 다룬 작품들을 우리는 알고 있다. 다양한 작품을 통해 만나게 되는 죽음의 수용소 이야기는

전쟁의 참상과 비인간성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 곳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죽을 운명이었지만 운좋게 연합군에 의해 살아난, 사람의 껍데기를 쓴 시체들과 같은 이미지들만이 기억에 남을 뿐.

 

 하지만 이 책은 그 지옥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의미없는 죽음이 일상이 되어버린 그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해야 했던 수많은 노력들을 통해 죽음과 망각을 뛰어넘은 인간성을 보여주고 있다. 삶 속에서의 죽음만큼 죽음 속의 삶도 우리의 인간성을

잘 드러내 준다라는 것을 이 책은 증명하고 있다. 

 

 책 곳곳에 실려있는 참혹한 내용들을 마주하는 것은 괴롭다. 수용자들을 인간이 아닌 존재로 만들기 위해 행해지는 수많은 잔학상과

의미없이 죽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끝없는 절망과 아귀와 같은 이기주의로 가득 채워진 지옥도를

예상하게 된다. 하지만 생존자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 주변을 지배하는 야만성과는 모순되는 고결함, 인간다움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자신들을 동물보다 못한 존재로 만드는 불결함에 맞서기 위해 그들은 커피로 얼굴을 씻었고, 그를 통해 인간성 말살에 대응했다. 모두 다 죽고 말거라는 절망 속에서 수용소에서의 참상을 증언하겠다는, 살아남은 자의 책임감과 죽음도 없애지 못하는

양심으로 그들은 살아남았다, 물론 혼자만의 힘으로 살아 남을 수는 없었다. 비참한 공동의 체험 속에서의 협조와 우애가 생존자들을

존재 할 수 있게 하는 필수 조건이었다.

 

 이렇게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증언은 비인간화의 밑바닥 속에서 인간의 도덕적인 힘이 시련을 해치고 살아남았다는 증거이다. 죽음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살아남기 위한 각오와 결의를 놓지 않았던 개개인의 힘이라기 보다는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삶과 인간다움을 유지하고자 하는 

의지의 존재를 보여준다.

 

 이 책은 우리 속에 숨어있는 영웅주의를 배격한다. 파괴되지만 패배하지 않는 영웅신화가 아니라, 파괴되는 순간 패배하는 보통 사람들이

파괴되지 않기 위해 행하는 노력 속에서 인간다움을 발견함으로서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던 인간다움과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게 한다. 

 

 단연 2013년에 읽은 책 중 가장 인상적인 한 권. 삶과 인간다움에 고민할 때 마다 찾게 될 한 권을 만나게 되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곳은 인간다움으로 가득한 곳일까? 비인간다운 곳일까? 만약 내가 사는 곳이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정글과 같은 곳이라면,

그 야만적인 곳에서 난 인간다움을 잃지 않고 어떻게 생존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posted by 아쌀